최신 이용후기

작성자: ddaadda
작성일: 2025-06-17 시간: 07:53

'얼음마녀' 상무님과 듀엣 부르고 살아남은 어젯밤

어제 우리 팀은 지옥을 경험했다. 평소 회식은 1차만 하고 칼같이 사라지시던, 사내 별명 '얼음마녀' 최상무님이 갑자기 2차 가라오케에 따라오신 거임.



팀장은 사색이 됐고, 막내 사원은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고요한 침묵 속, 우리 박부장님이 비상사태에만 연락한다는 '클래식 가라오케'에 전화를 돌렸다.



그렇게 도착한 룸. 분위기는 남극보다 차가웠다. 상무님은 팔짱 낀 채로 미동도 없고, 노래방 기계는 묵언수행 중이고, 테이블 위 과일 안주는 화석이 되어가고 있었다. 누군가 탬버린을 잘못 건드리기라도 하면 바로 퇴사 각서 써야 할 분위기.



그때, 구세주처럼 점장님이 들어오셨다. 점장님은 방안의 살벌한 기류를 1초 만에 파악하더니, 상무님께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상무님, 부장님께 들었습니다. 선곡하시는 센스가 보통이 아니시라고. 혹시 이문세 씨 노래 좋아하시면, 제가 기가 막힌 MR로 하나 준비해드릴까요?"



거짓말처럼, 최상무님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렇게 상무님의 독창회가 시작됐고, 우리는 영혼을 담아 박수를 쳤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노래 한 곡에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상무님이 마이크를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김대리, 나랑 듀엣 한 곡 해야지?"



머릿속이 하얘지고 손에 땀이 찼다. 여기서 거절하면 내일 내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때, 내 옆에 조용히 앉아있던 파트너가 진짜 프로의 실력을 보여줬다.



그녀는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걱정 마세요. 상무님 음역대 보니까 '사랑보다 깊은 상처' 딱이에요. 제가 여자 파트 화음 다 깔아드릴게요. 그냥 편하게 부르세요."



그녀는 완벽한 타이밍에 노래를 예약했고, 나는 정말 편하게 내 파트만 불렀다. 내 부족한 노래를 그녀의 화음이 완벽하게 감싸주는데, 노래가 끝나자 상무님이 박수를 치며 웃고 계셨다. 내가 입사 3년 만에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날 이후, 회식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상무님은 먼저 농담을 건네셨고, 우리는 편하게 노래를 불렀다. 다음 날 아침, 최상무님이 출근하는 나를 보며 말했다. "김대리, 어제 노래 좋았어."



그 한마디에 나는 어젯밤의 영웅이 되었다. '클래식 가라오케'는 그냥 노래방이 아니었다. 얼어붙은 회식 자리를 녹이고, 말단 대리의 목숨을 구해주는 전쟁터의 야전병원 같은 곳이었다.